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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 : Events22

[280년] 삼국 통일 (三國統一) :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 사건의 배경: 이미 기울어진 삼국, 통일의 마지막 페이지를 향하다220년 위(魏)나라의 건국으로 시작된 삼국 시대는 촉한(蜀漢, 221년),오(吳, 222년)나라의 성립과 함께 약 60여 년간 세 나라가 천하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삼국의 힘의 균형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263년, 위나라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촉한이 먼저 멸망했고,265년에는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 진(晉)나라를 건국하면서대륙에는 진나라와 오나라, 단 두 나라만이 남게 되었습니다.천하 통일이라는 마지막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사마염은 정치적 안정, 강력한 군사력 확보,그리고 내부의 잠재적인 반란 세력들을 철저히 정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마침내.. 2025. 4. 26.
[265년] 진나라 건국 (晉朝建國) : Founding of Jin Dynasty 📜 사건의 배경: 조조가 세운 나라, 사마씨의 손에서 역사의 뒤안길로220년, 야심가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오랫동안 허수아비 황제였던 후한의 헌제를 마침내 폐위시키고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격동의 삼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조씨 일족이 세운 위(魏)나라의 실권은 점차 황실의 손을 떠나,뛰어난 지략가 사마의(司馬懿)의 가문인 사마씨 일족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합니다.특히 조조가 세상을 떠난 후, 위나라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중신들이 연이어 숙청당하고,마침내 사마의가 일으킨 쿠데타(고평릉의 변)를 통해 정권의 실질적인 중심에 서게 되면서위나라 황실은 이름뿐인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막강한 군사력을 장악했고,그의 아들 사마염(.. 2025. 4. 26.
[263년] 촉한 멸망 (蜀漢滅亡) : Fall of Shu Han 📜 사건의 배경: 기울어진 천칭, 외침은 강하고 내부는 속절없이 무너지다삼국 시대의 불안정한 균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220년 조비의 즉위로 시작된 위나라 정권은 사마의 일족의 권력 장악을 통해 내부적인 안정을 이루었고,장강 이남의 오나라(손오)는 독자적인 세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촉한(蜀漢)은 위대한 승상 제갈량 사후, 정치와 군사 양면에서 뚜렷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제갈량의 뒤를 이어 강유(姜維)가 여러 차례 북벌을 감행하며 북방 진출을 시도했지만,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촉한의 국력만 급속도로 소모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이러한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야심가 사마소(司馬昭)는 마침내촉한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한.. 2025. 4. 26.
[234년] 오장원 전투, 제갈량 사망 (五丈原之戰 / 諸葛亮卒) : Battle of Wuzhang Plains & Death of Zhuge Liang 📜 사건의 배경: 멈추지 않던 꿈, 마지막 북벌에 모든 것을 걸다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은 무너진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웅대한 뜻을 품고,그의 생애 동안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북쪽의 위나라(魏)를 향한 기나긴 북벌(北伐)을 감행했습니다.234년, 그는 마지막으로 전 군을 이끌고 전략적 요충지인 기산(祁山)으로 진격하여,위나라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냉철한 전략가 사마의(司馬懿)와 마주하게 됩니다.이때 양군의 주된 격전장이 된 곳은 험준하고 메마른 땅, 오장원(五丈原)이었습니다.촉한의 내부는 여전히 어린 황제 유선(劉禪)과 인재 부족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제갈량은 오직 한나라 부흥이라는 숭고한 대의를 위해 자신의 지친 몸을 돌보지 않고 마지막 북방 원정을 강행했던 것입니다... 2025. 4. 26.
[229년] 오 건국 (吳國建國) : Founding of Eastern Wu 📜 사건의 배경: 마지막 조각, 강동의 호랑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후한 왕조의 쇠락과 함께 시작된 격동의 삼국 시대.조조가 다져놓은 기반 위에 그의 아들 조비가 220년 위(魏)나라를 건국했고,유비는 221년 촉한(蜀漢)을 세우며 한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천명했습니다.하지만 강동을 굳건히 다스리던 **손권(孫權)**은 이들보다 다소 늦게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당시 손권은 이미 강동 지역의 확고한 지배자로서 실질적인 군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나,표면적으로는 위나라의 명분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오왕(吳王)”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위나라와 촉한의 대립이 점차 뚜렷해지고,촉한과의 동맹 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손권은 점차 독자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강화해 나가기 .. 2025. 4. 25.
[227년] 출사표 (出師表) : Memorial of Departure 📜 사건의 배경: 촉한의 운명을 짊어진 승상의 붓후한 왕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이 천하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혼란의 시대. 촉한의 창건자 유비가 백제성에서 영원히 눈을 감은 후, 어린 황제 유선(劉禪)이 보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국정 운영의 키는 유비가 생전에 **“나의 모든 것을 그대에게 맡긴다”**라는 유언을 남겼던 충신 제갈량(諸葛亮)의 손에 쥐어집니다.당시 촉한은 북방의 강력한 적국, 위나라(魏)에 맞서 존립하기 위해 더 이상 수세적인 태도만 고수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랜 고심 끝에 제갈량은 **북벌(北伐)**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하기로 결심하고, 어린 황제 유선에게 자신의 변함없는 충성심과 북쪽으로 군사를 일으키는 당위성을 상세히 담은 .. 202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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